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쓰자카 다이스케 (문단 편집) ==== 1999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 마쓰자카는 아마추어 시절에 [[고3]]이던 [[1998년]] 9월에 일본 [[고시엔 구장]]에서 펼쳐졌던 아시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등에 출전하였을 정도로 국가대표 단골이었다. 프로 투수가 되고나서는 데뷔 첫 해 9월에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전까지 '''23경기 14승 5패 166이닝 동안 139탈삼진 ERA 2.60'''을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다승 1위를 달려 성공적인 프로 무대 데뷔를 알린 마쓰자카. 그런 마쓰자카가 프로선수로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처음 참가한 대회는 1999년에 열린 제 20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이다. 이 대회는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2000 시드니 올림픽]] 예선을 겸한 대회로 이 대회의 우승은 [[이승엽]]과 [[박재홍(야구)|박재홍]], [[구대성]] 등이 활약한 한국의 몫이었고, 준우승은 일본이 차지했다. 비교적 넉넉하게 2등까지 시드니 올림픽 진출권이 주어졌기에 한일 양국가는 1등에게만 올림픽 직행권이 주어지던 [[김경문호/2007년#s-3|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와 달리, 대회 마지막 날 예정 된 '''한일전에 총력을 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전의 중국과 대만전을 모두 잡아 2연승을 하면 사실상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되기 때문이었다. 이때문에, 이 둘 다음으로 전력이 강한 대만전에 양 국가 모두 총력을 쏟았는데 에이스 마쓰자카는 따라서 한국전이 아닌 대만전에 등판하게 된다. 여담으로, 마쓰자카의 방한 덕에 당시부터 전국구 스타였던 [[이승엽]]과의 맞대결을 기대하는 한국 팬들이 많았는데 마쓰자카는 대만전에만 모습을 드러내며 이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https://www.youtube.com/watch?v=g2zjkmqoAO8|한일전]]은 대회 마지막 날에서야 성사되었는데 사실상 말이 결승전이지 두팀 다 올림픽 직행을 확정지어 '''1,2위 결정전에 불과'''했다. 게다가 당시 대회는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9월에 열린 대회로, 대회가 끝난 뒤 소속팀에 바로 합류하여 잔여 시즌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 실제, 마쓰자카는 이 대회가 끝난 직후 리그에 복귀해 2경기 2승 무패 14이닝 12탈삼진 4실점으로 좋은 피칭을 보여주며 시즌을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이로 인해 최종 성적은 25경기 16승 5패 ERA 2.60.]였으므로 굳이 무리해서 한일전 이전 2일전에 있던 대만전에 선발 등판해서 9이닝이나 던진 마쓰자카를 하루만 휴식을 주고 한일전에 기용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한일전이 성사되었다면, 당시 세이부의 반발이 심해 [[혹사#s-5.2|혹사]] 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도 아니고...-- 게다가, 만약 마쓰자카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 털렸다면 컨디션 난조 탓으로 돌릴 수도 있었고 오히려 예상 외로 한국 타자들이 털렸다면 2일 전에 9이닝이나 던진 투수도 공략 못한다고 비판 당했을 것이 뻔하다.] 마쓰자카는 결국 대회 첫 번째 경기이자 올림픽 직행의 가장 큰 걸림돌인 [[https://youtu.be/1dF6E6SgItc|대만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장한다. * 2회까지 잘 막고 있던, 마쓰자카는 3회 들어 선두타자에게 볼 넷을 내주고 만다. 이후, 후속타자를 삼진 처리해 원 아웃을 잡아내었지만 다음 타자에게 중견수 앞 안타를 맞아 1사 1,2루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여기서 후속 타자에게 중견수 앞 빗맞은 안타를 맞아 선취점을 내준다. 스코어는 1:0으로 뒤진 가운데 1사 1,2루의 위기가 계속 되던 때, 다음 타자를 1루수 번트 플라이볼 아웃, 그 다음 타자는 삼진 처리하며 더 이상의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 했다. 이후, 4회말 일본 타자들이 한점을 만회해주어 스코어는 1:1 동점이 되었고 이 때부터 대만의 선발 차이충난[* 이 선수는 훗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야구|부산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해 2002년에 다시 방한하였다. 실제, 한국과의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야구#s-4|결승전]] 경기 선발 투수로 나왔다. 당시 결승전 경기에서는 1999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만큼의 호투를 보여주지는 못했고, 4회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조기 강판됐다. ][* 이외에도, 2001년 야구 월드컵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등판했던 적도 있고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있다.]과 마쓰자카의 '''팽팽한 투수전이 시작'''되었다. 6회초, 대만 선두타자에게 좌전 안타를 맞은 것을 제외하면 마쓰자카는 3회 1사 1,2루 스코어 1:0 상황부터 9회까지 '''단 한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정확히는 4회부터 9회까지 한 타자만 출루를 허용하고 나머지 타자는 모조리 범타 처리한 셈. 물론,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상술한 6회초 안타를 치고 나간 선두타자가 마쓰자카의 보크와 희생 번트로 3루를 밟아 1사 3루가 되었는데, 이 위기가 마쓰자카가 이 경기에서 맞은 가장 큰 위기였다. 여기서, 곧장 다음 타자를 삼진 처리하고 그 다음 타자는 2루수 평범한 땅볼로 처리하며 실점없이 위기를 넘긴다. 이 위기를 끝으로 마쓰자카는 7회부터 9회까지 '''3이닝 퍼펙트'''로 대만 타자들을 범타로 돌려세운다. 그러는 한편, 일본 타자들도 여전히 상대 선발 차이충난에게 막혀 8회까지 추가점을 뽑지 못하고 8회까지 단 1점으로 묶여있었다. 9회에도 선두타자가 좌익수 플라이 아웃 당하고 이후 다음 타자가 삼진 처리되며 무난한 투 아웃 상황이 되어 정규 이닝이 그렇게 무난하게 끝나는 듯 했다. 투아웃에서 일본 타자 오키하라가 친 타구가 3루 쪽에 평범하게 뜨고 말았다. 정규이닝이 끝나고 당연히 연장행이구나 싶었던 찰나[* 마운드에 있던 투수 차이충난도 타구가 뜨자마자 3루를 가리키며 마운드에서 내려와 덕아웃으로 향했다. 당연히 정상적으로 이닝이 끝날줄 알았던 모양.], 대만의 3루수 홍셍셴이 평범하게 내야에 뜬 공을 [[https://youtu.be/1dF6E6SgItc?t=9310|잡지 못하고 떨어트리며]] --히 드랍 더 볼...--[* 한국의 [[김상현(1980)|김상현]]도 프로 경기에서 [[https://youtu.be/yz0u-_KtnyU?t=278|비슷한 실수]]를 했는데, 김상현이 놓친 공은 높게 뜨기라도 했지 이 때 3루수 플라이 볼은 매우 평범하고 낮게 떴으며 낮게 뜬 것에 비해 체공 시간도 길어 프로 수준의 선수가 못 잡을래야 못 잡을 수가 없는 타구였다. 물론, 두 명의 두 타구 모두 프로 수준이면 잡아야 되는 수준의 플라이 볼인 것은 [[도긴개긴|매한가지]]지만...] 원래라면 정상적으로 정규 이닝이 끝났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9회말 투아웃에 주자 1루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운 좋게 출루한 오키하라가 2루 도루를 성공했고 흔들렸던 차이충난은 후속 타자 이이즈카에게 볼 넷을 내주며 2사 1,2루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이 날 경기 위력투를 보여준 투수 차이충난이 물러나고 이후 차오준후이가 구원 투수로 올라왔다. 하지만, 결국 쌓인 장작으로 인한 불을 끄지 못하고 헤이마 준에게 끝내기 안타를 내주며[* 그 이전에, [[폭투]]로 인해 주자들이 하나씩 진루해 2사 2,3루 상황이 되었다.] 이날 일본은 최종스코어 2:1로 신승을 거뒀고 마쓰자카는 프로 선수로서 참가한 '''국제대회 첫 경기에서 선발승'''을 거뒀다. 특히, 9이닝 동안 단 3피안타로 대만 타선을 묶으며 1실점 '''완투승'''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 날 경기에서 마쓰자카의 기록은 '''9이닝 13탈삼진 3피안타 1볼넷 1실점 완투승.''' 최고 구속은 직구 151km/h였다.[* 당시 마쓰자카의 피칭 내용을 기록한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4444292|기사]]] 특히, 이 날 경기 6회 무사 2루 상황부터 9회초까지 '''12타자 연속 범타 처리'''로 뒷심을 보여주며 대만 타선을 경기 후반부에 꽁꽁 틀어막은 것은 압권. 상대 선발 차이충난도 8과 3분의 2이닝 동안 11탈삼진 2실점(1자책) 당일 경기 ERA 1.04로 훌륭한 피칭을 보여주었으나, 마지막 아웃카운트 직전 3루수의 허접한 수비 실책으로 인해 원 아웃을 남겨놓고 정규이닝을 마치지 못한채 팀의 패배를 바라봐야 했다. 마쓰자카는 일본 원정팬 3000명을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4451756|동원]]시켰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중이었으며, 그 인기에 걸맞게 프로 자격으로 출전한 국제대회 첫 경기부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쓰자카는 대만과의 경기가 끝난 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게 돼 기쁘다. 한국전에도 감독이 등판을 지시하면 던지겠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4444292|당시 인터뷰가 실린 기사.]]]라고 마지막 날 예고된 한일전에 나가고 싶은 소망을 인터뷰에서 밝혔으나 그 소망과 달리, 투수 보호 차원에서 한국과의 매치업은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한국 안방에서 마쓰자카와 [[이승엽]]의 대결을 기대한 한국팬들에게는 아쉬운 소식.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15일 대만전 9이닝이나 던진 이후 하루만 휴식을 취하고 17일 [[https://www.youtube.com/watch?v=Cl-C5yNWxsA|한국전]]에서 나온다는 것은 엄청난 [[혹사#s-5.2|혹사]]이다. 그리고 그런 [[혹사#s-5.2|혹사]]를 각오할 정도의 대회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올림픽 예선이었으니. 그리고 일본이 이전 2경기에서 올림픽 직행을 결정짓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한일 양국 다 대만과 중국을 무난하게 눌러 최소 2위를 확보해 시드니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지은 직후의 경기였기에 일본 입장에서 에이스 투수를 무리하게 등판 시킬 이유가 없었다. 여하튼, 대만전의 좋은 투구로 리그내에서 그의 좋은 활약이 [[뽀록|플루크]]가 아니었던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이 경기를 시작으로 '''국제대회에서 마쓰자카의 전설이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